1996년, 문민정부의 對 일본 문호 개방을 필두로 다양한 대중 문화가 꽃피며 단군 이래 가장 화려했던 시기로 꼽힌다. 또한 미국에 유학이나 이민을 갔던 사람들이 미국의 선진 문화를 들여와 압구정 오렌지족, 낑깡족, 감귤족 등 한국 문화에 다양성을 부가하기도 했다. 이에 아시아, 특히 대만, 홍콩, 한국은 새로운 문화의 수입처이자 수출국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여러 활동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이 오늘 살펴볼 마이클잭슨 내한이다.

 마이클잭슨은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박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가 한국에 내한공연을 가지게 된 계기 중 하나도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점이 컸었다. 또한 그의 성격은 소탈하기로 유명한데, 내한 공연 며칠 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그는, 공연 당일 이전까지, 아니 당일 오전까지 그의 백댄서들과 호흡을 맞추며 지독한 시차를 이기고자 하였다. 하지만 사고는 이때 일어났으며, 그의 인생을 바꿀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된다. 어렸을 때 부터 잭슨5를 통해 수많은 공연 경험을 가지며 그야말로 월드스타이자 공연의 神인 그였지만, 동아시아 끝부분에 위치한 한국에서 공연을 갖는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였기에 손끝 발끝에 혼을 담아 안무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데, 그의 대표작 Thriller안무를 연습하던 중 그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흰 장갑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 멀리 날아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무대 설치 공사가 한창이였고, 꽤나 멀리 날아간 것이기 때문에 빠듯한 시간에 맞추어 일정이 짜여진 틈을 비집고 장갑을 찾아 바닥을 뒤진다는 것은 그에게도 부담이 되었다. 이에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조명을 담당했던 인부는 그의 사정을 알게 된다. 그 인부는 마이클 잭슨에게 자신의 목장갑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평소 팬이였던 인부의 입장에서는 그가 항상 소지하고 있는 목장갑을 마이클 잭슨에게 주게 된다는 사실이 평생의 술안주거리가 될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이윽고 중학교때부터 성문종합영어를 통해 갈고닦은 그의 영어 실력을 마침내 발휘하게 된다.

 빨간 목장갑을 든 손과 함께 그가 내뱉은 한마디 "I give you this".(당신께 이 목장갑을 드리겠소)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장갑을 보며 말한 한마디 "I will give you back."(장갑, 내 꼭 돌려드리리다). 그렇지만 인부의 마음은 살짝 달랐다. 마이클 잭슨이 그저 자신의 목장갑을 끼고 춤을 추어준다는 사실이 감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어 실력은 이내 바닥나게 되었고, 답답한 마음에 한국어가 나오게 되었다. "빌리진 마시고 그냥 쓰세요." 이를 듣자 마이클 잭슨의 머리엔 수많은 생각이 스치게 된다. 하지만 그 생각들의 출구는 그 인부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었다. 이 공연은 마이클 잭슨이 방한했다는 사실로만 기억되나, 마이클 잭슨 해당 공연을 통해 그의 곡 Billie Jean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사에서 빌리진의 아이를 가지고 소유권 분쟁을 하는 것이 마치 목장갑을 빌려준 조명 인부와 장갑의 소유권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오히려 조명 인부가 아닌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평생 술안주 거리(이때 술은 사케 준마이 다이긴조를 마셨다고 한다)로 삼았다고 한다.

(생략)
노태우라는 피할 수 없는 벽에 막혀 결국 대통령이 될 기회를 한번 미룬 삼김, 그러나 이번엔 YS의 강력한 리더쉽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고 있었다. 이에 전략가 JP의 마음은 자연스레, 어쩌면 당연하게도 DJ에게 향했다. 지역색이 약한 JP의 특성상 그 자신이 스윙보트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전 대선의 뼈아픈 실패는 DJ에게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했다. JP는 그런 DJ를 다시 일으키기에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당시 정치평론가들의 의견이다. JP는 지략가 답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DJ를 정치판에 다시 불러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릇 사람은 힘들었던 상황을 기억하면 초인적인 힘이 난다고 했던가. JP는 DJ에게 힘들었던 기억, 즉 미국 망명 당시의 상황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JP 또한 사업차 미국에 자주 방문했었기에 영어에 능통했던 차였다(이때 설립한 회사가 여러 차례 인수 합병을 거쳐 JP 모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긴 연설로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 만큼이나 뼈를 때리는 한마디 말의 힘을 믿었던 JP는 동교동의 DJ 사저에 직접 찾아가기에 이른다. DJ는 JP가 급작스럽게 본인을 방문한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불편한 내색을 감출 수 없었다. JP는 그런 DJ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물을 한잔 들이킨 뒤 이렇게 말했다. "Yo DJ pump this party."(김대중 선생님 이 당을 맡아주십시오)
(중략)
대통령이 될 DJ에게 큰 산은 무엇보다도 전 정권의 IMF 외환위기를 잘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0순위, 아니 정권의 존재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DJ의 취임식이 거행되기 전, DJ는 자신을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준 장본인인 JP를 직접 초대해 만나게 된다. 지난번 만남과는 정 반대의 상황인 것이다. 평소 검소하게 지내던 DJ 답게 차 한잔 마시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시시껄렁한 안부 인사를 전한 둘은 먼 산을 보며 앉아있었다. 그러자 침묵을 깬 DJ의 한마디는 JP가 땀흘려 일궈놓은 정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말이었다고 회고한다(출처 - JP 모건은 모든지 건든다(예람당)). 그 한마디는 DJ의 야심차고 어찌보면 가련하면서도 배짱 있는 한마디였다. "Drop the beat."(대한민국의 빚을 탕감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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